소통이 발전 원동력
시민 스스로 노력해야

2004년 10월 12일

나경수 전남대박물관장·국어교육과 교수

한국영화의 급성장에 세계가 놀란다고 한다. 혹자는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한 것도 한국영화의 급성장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한다.
한국영화를 성장시킨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바로 드라마를 즐겨온 한국의 두터운 문화소비층일 것이다. 삼성전자의 성장 배후에도 역시 핸드폰을 자주 바꾸고, 초고속 인터넷망과 아울러 세계 최고의 컴퓨터 보유를 자랑하는 내수 시장의 국민이 자리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소비자의 힘은 막강하다.
최근에 필자는 옥편에도 없는 한자 하나를 만든 적이 있다. `부를 창(唱)'에 대립되는 글자로 `들을 창(耳昌 )'자를 새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고 보니 두 종류의 명창을 개념적으로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노래 잘하는 명창(名唱)이요, 다른 하나는 좋은 소리를 감별할 줄 아는 소위 `귀명창'이라는 뜻의 명창(名耳昌)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말이지만, 전라도에서 열리는 판소리 경연대회에 심사를 온 서울이나 외지의 심사위원들이 청중의 박수소리를 듣고 채점을 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누가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금방 알아채는 예민한 귀를 가졌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온 역대의 명창들은 인류사 최고의 성악곡으로 평가받는 판소리를 바로 전라도 지역에서 만들어냈다.
예술은 공급자인 전문가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향유하는 소비층의 취향과 수준에 맞게끔 발전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예술의 발전에는 공급자와 소비자간의 쌍방향적인 상호소통이 크게 작용한다. 예술을 보다 확대하자면 전반적으로 문화 역시 유사한 궤적을 그리며 발전한다고 하겠다.
최근 광주가 문화수도를 지향하면서 갖가지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문화수도의 1차적 수혜자일 수 있는 광주시민의 자세와 자질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문화수도가 정부의 지원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 처럼,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부의 의지와 지원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론 이 점을 간과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에 의해서 아시아문화전당이 지어지고, 여타의 문화시설과 재정적 지원이 뒤따른다 해도 그것으로 문화수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문화수도는 먼저 시민 스스로가 문화수도의 시민으로서 자질과 자격을 지니지 않으면 안될 줄로 안다. 광주시민의 차별화된 문화적 소양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문화는 매우 광범위한 말이기는 하지만, 문화수도에 걸맞은 문화수도의 시민은 문화도시를 꿈꾸는 다른 도시와는 분명히 다른 하나의 자격증을 소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문화 향수 능력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능력은 노력의 대가이지 거저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 광주에는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예를 들어 광주 비엔날레를 외면하는 광주 시민이 진정 문화수도의 시민이 될 수 있을까? 문화수도시민증은 주민등록증처럼 정부가 발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문화수도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의 문화적 소비욕구가 클 때 비로소 스스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