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송기숙 대통령 직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장·작가
“첨엔 하기 싫었는디, 주위 후배들이 워낙 간청을 하고, 광주 일이 곧 나 자신의 일이란 생각도 들어 기꺼이 응했구만요. 근디 정말 쉽지 않구먼. 7~8달 정도 태스크포스팀을 짜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지금도 거의 매일 회의하지만 난생 처음 벌이는 일인데다, 국내에 다른 모델도 없고, 조직규모도 커질 것인데 자칫 방만해질까 하는 우려도 생깁디다. ” 도시 문화리모델링 ‘발상의 전환’
지난달 대통령 직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이 된 소설가 송기숙(69)씨는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의욕 반 푸념 반을 섞어 첫마디를 풀어놓았다. 2000년 전남대를 정년퇴임한 뒤 전남 화순의 무등산 기슭 산방에서 칩거했던 그는 요즘 ‘자의반 타의반’ 행정가로 변신한 참이다. 그가 이끄는 위원회는 민주화의 성지 광주를 아시아 문화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참여정부가 마련한 국책 문화프로젝트를 자문·심의하는 범정부 기구다. 건국 이래 최대의 문화국책사업답게 총리급 위원장 아래 재경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등 13개 부처 장관, 광주시장, 민간전문가 15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위원회와 실무기구인 문화중심도시조성추진기획단(단장 이영진)이 정식출범하면서 서울과 화순을 오가는 그의 일과는 더욱 바빠졌다. 10일 오전 경복궁 안 옛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자리 잡은 새 사무실에서 송 위원장을 만났다. 뒤늦게 나타난 그는 “아침에 안병영 교육부 장관과 만나 사업구상을 설명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공식 면담 일정이 잡힌 것은 아니지만 장관들에게 미리 관심을 환기시켜주려고 환경부와 건교부 등 여러 부처들을 돌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문화수도로도 불리는 문화중심도시 사업은 노 대통령의 대선공약. 2023년까지 예산 2조원을 들여 국립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건립과 특별법 제정을 통한 문화특구 지정 등으로 도시 얼개를 아시아 문화생산기지로 바꾼다는 목표다. 핵심 시설로 2010년까지 건립되는 아시아문화전당에만 국고 5000억 원이 투입된다. 7만7천평의 터에 들어설 전당은 아시아문화교류원, 공연장, 아시아문화대학원대학, 아카이브, 도서관, 어린이지식박물관, 콘서트홀 등이 들어서는 복합문화센터로 운영된다. 서울 예술의 전당(1500억여원), 새 국립중앙박물관(4000억여원)을 능가하는 규모다. 하지만 사업자체가 장밋빛 일색이라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송 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뚜렷하다”고 평가했으나 국고 1조원에 지자체 예산 5천억원, 민자 5천억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장기 조달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고 구체적인 전망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에게 사업의 정체성과 성격 등을 캐물었다.

아시아문화전당 모델 ‘퐁피두센터’
-문화수도와 문화중심도시란 이름이 함께 쓰이고 있는데 좀 혼란스럽습니다.

=문화수도는 대선 때 행정수도와 비슷한 뜻으로 썼는데 지방분권 정책과 달리 집중을 뜻하는 정책 개념이어서 이창동 문화부 장관은 잘 안 맞는다고 했어요.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 말을 고집하더군요. 문화중심도시는 행정수도 개념과 달리 팽창하는 국내 도시에 문화적 리모델링이란 전범을 제공하는 것이죠. 어쨌든 광역도시 전체의 문화적 틀거지를 국가가 20년 이상 뒤바뀌는 계획을 진행한다는 자체가 경제성을 따지기 전에 발상의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중심도시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정한 것에 대해 어떻게 의미를 두고 있는지요.

=문화도시 계획을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채택하는 경우는 건국 이래 없었습니다. 해방 뒤 이땅의 문화는 정책적으로 소외되기 일쑤였습니다.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전통문화가 미개의 상징으로 전락한 채 해방을 맞았지만 바로잡을 겨를 없이 전쟁을 맞았고, 근대화 구호 속에 먹고 살기 바쁜 나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번 사업은 더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인식의 소산이죠.

-광주란 특정지역에 이런 대규모의 문화도시 프로그램을 국책사업으로 시행하는 데 대한 반발도 있는 듯합니다.

=문화중심도시사업은 행정수도나 다른 지역 도시, 멀리는 아시아권 각 도시에 문화가 도시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새 개발모델을 선도한다는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가령 충청권의 신 행정수도 건설만 해도 주거단지를 새로 디자인해야하는데 광주 쪽 문화도시 모델이 전범이 될 수 있겠지요. 처음에 광주문화중심도시라고 했다가 지명을 뺀 것도 다른 지역으로의 모델 확산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계획안에서도 광주에 이어 경주와 부산을 각각 역사문화, 영상문화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화도시모델은 세계적 흐름입니다. 단순 경제논리가 아니라 문화적 관심에 따라 도시 정책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거죠.

-거액의 국고를 들여서 조성되는 아시아문화전당은 어떤 성격의 시설입니까.

=건물 자체가 명물이 된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가 모델입니다. 도살장이던 곳이 치밀한 건축-예술 프로젝트로 관광명소가 되지 않았습니까. 접근하기에 친화력이 있고 이 시대 한국문화에 대한 철학적 바탕이 깔린 공간으로 삼으려 합니다. 현재 설계지침서를 준비 중인데, 곧 현상공모에 들어갑니다. 전당의 기능은 문화교류, 자료축적·연구, 교육에 집약됩니다. 전통문화의 역량을 바탕 삼아 돈 되는 문화산업를 생산하는 터전을 만들어보자는 게 기존 시설들과 차이점이에요. 애니메이션 등의 문화산업을 집중육성하고, 전문가 양성을 위한 대학원 대학이 생깁니다. 문화적 동질성이 높은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많은 외국예술인들이 올 것입니다. 문화산업 희귀자료를 갖춘 대규모 자료실(아카이브) 조성도 중요하지요.

매년 1000억 예산확보 일단은 낙관
-문화수도 개념이 강조되다 보니 문화관광부의 광주 이전론을 놓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광주 사람들이 진지하게 토론했던 문제지요. 문화행정이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갖는 듯합니다. 문화부가 광주로 간다면 분권화의 상징적 의미는 있겠지만 책임 있는 말은 당장 못하겠습니다. 단 문화소비의 중심이 서울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무작정 옮길 경우 현실적 문제들이 많아 당장 가시화는 어렵다고 봅니다. 더 많은 의견수렴이 있어야겠지요.

-산술적으로 내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예산이 필요한데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요.

=2월초 대통령령으로 기구가 출범하다보니 지난해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내년에 1300억원을 잡아놓았는데, 추진기획단의 전문인력 인건비와 활동비용을 확보하는 게 과제입니다. 위원장을 총리급으로 격상시킨 자체가 정부의 의지를 드러낸 것인 만큼 낙관합니다. 장관들 미리 만나고 다니는 것도 예산을 확보하려는 포석이지요.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해본 적이 없는데 설득하려니 난감하고 막막합니다(웃음).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