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매일신문
(사설)/‘문화수도 선포’ 보다 ‘예향’찬가를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문화수도 원년’을 선포하리라는 시민들의 기대가 무너졌다. 광주시민들은 노 대통령이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 참석, ‘문화수도’를 공식 인정해 줄 것으로 믿었지만 끝내 감동적인 발언은 나오지 못했다.
치사를 통해 울려 퍼진 것은 “광주가 한국의 문화중심, 나아가 아시아, 세계의 문화중심이 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기대했던 문화수도란 표현은 ‘광주시가 추진하는 문화수도’란 말로 살짝 비껴갔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광주시민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후보시절의 공약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광주공원 유세에서 ‘광주 문화수도’를 외침으로써 뜨거운 박수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도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지원의 포문을 열었다.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적 추진에는 ‘오랜 문화전통’이라는 역사적 자산과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열정, 지도자들의 열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비엔날레가 성공했듯 문화중심도시가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 지원하겠다”고 덧붙인 것이다. 이는 결코 잊은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열정을 높이 사고 있으며 그 열정을 지도자로서 적극 지원해주겠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이로 보아 대통령이 그날의 약속을 버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직 ‘마음속으로 깊이 간직하고 있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것이 진심이라면 외부 지원보다는 스스로 더 큰 힘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격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은 타지역의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산, 경주, 전주 등에서도 문화도시를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문화수도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주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반발을 의식했거나,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문화수도 선포’를 못했다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비엔날레가 성공했듯 광주 문화도시도 성공할 것”이라면서 “정부도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가져본다. 광주는 오랫동안 지역 개발면에서 많은 푸대접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말없이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를 키워왔다. 특별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커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침묵으로 키워온 문화의 향기가 더 진한법이다. 스스로 더 알차게 키워가는 게 바람직한 길이다. 문화란 역사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온갖 지원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 바람 속에서 더욱 강하게 자라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번 ‘문화수도 선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잘된 것이 아닌지 새겨볼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요란한 선포보다는 대통령이 광주를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이 더 소중한 일이 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대통령이 전 국민의 요청으로 ‘문화수도’를 선포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광주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단지 정부는 광주시민들의 열정을 외면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호남민심’을 고려하는 듯한 시각으로 광주를 보아선 안된다. 오직 광주를 원래의 ‘예향’으로 보아야 한다. 예향을 정치적인 예향으로 만드는 것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 될 것이다.